시조/유래

진보조씨(眞寶趙氏)의 시조(始祖) 조용(趙庸)은 지린(之遴 : 배천 조씨의 시조)의 11세조이며,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운주(雲柱)의 아들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문장(文章)과 학행(學行)이 탁월(卓越)했으며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삼사 도사(三司都事)․계림부(鷄林府) 판관(判官) 등을 거쳐 예조(禮曹) 총랑(摠郞)에 올랐다. 1392년(태조 1)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면서 벼슬에서 물러나 야주군(夜珠郡)에 은거(隱居)하자 조정(朝廷)에서 그의 절의(節義)를 가상(嘉尙)히 여겨 진보군(眞寶君)에 봉하고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을 증직(贈職)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진보(眞寶)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보(眞寶)는 경상북도(慶尙北道)에 있는 지명으로, 신라 초기에는 칠파화현(漆巴火縣)이라 하다가 경덕왕 때 진보현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진안현(鎭安縣 : 고구려의 助攬縣)과 합쳐 보성부(甫城府 : 載岩城)로 개편하였다. 고려 현종 때 예주(禮州)에 편입시켰는데 왜구로 인해 그 지방을 비워 두었다가 조선 태조 때 현(縣)을 설치하였으며, 세종(世宗) 때 청부(靑鳧)를 합하여 청보군(靑寶郡)이라 하다가 혁파(革罷)하고 진보로 고쳐 현(縣)으로 삼았다. 1474년(성종 5) 청송(靑松)에 편입했다가 1478년(성종 6) 복구하였으며 1895년(공정 32)에 군(郡)이 되었다. 1914년 군을 폐하고 동면과 북면은 영양군(英陽郡)에 병합되고 나머지는 청송군(靑松郡)에 편입되었는데, 그 중심 지역은 진보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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